쉬는 시간의 풍경

2009. 12. 2. 15:18일기

<쉬는 시간의 풍경>
2009.12.01 화요일

2교시에 있을 한자 인증 시험을 앞두고, 우리 반은 여느 때와 같이 쉬는 시간을 맞았다. 기말고사가 끝나서 긴장이 풀렸는지 한자 공부하는 아이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면 나만 빼고 모두 시험 준비를 마쳐서 자신에 넘쳐 있거나!

나는 문제지에 나온 한자 위에 손가락을 대어 덧써보다가, 아이들이 너무 자유롭고 신나게 노는 걸 보고, 나만 이러고 있는 게 잘못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일어서서 의자를 앞으로 밀어 넣고 교실 뒤로 걸어나간다.

원래 미술실이었던 우리 교실 뒷부분은 다른 반 교실보다 엄청 넓다. 그중 제일 오른쪽 구석 바닥에 처박히듯 털썩 주저앉는다. 나는 옷 뒤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고 벽에 기댄 자세로 느긋하게 앉아서 아이들이 노는 풍경을 감상한다. 이렇게 앉아있으면 어떤 날은 햇빛이 싸아~ 들어와서 감기로 골골한 몸이 따뜻하게 풀릴 때도 있고, 내가 직접 아이들을 찾아다니지 않고도, 아이들이 "뭐하냐?"하고 궁금해서 내게 오기도 한다.

성환이와 찬솔이는 오늘도 눈만 찌릿 마주치면 어김없이 쫓고 쫓으며 교실 안을 파다다다 뛰어다니고, 책상 모서리에 옆구리를 찌어 쿠훙~ 필통을 떨어뜨리고 교실 뒷문이 떨어지도록 태쿵! 열어 재낀다. 뒷문이 열릴 때 생기는 사물함과 문 사이의 사각형의 공간에서, 거울을 보며 서로 머리를 손질하고 묶어주는 은민이와 성주의 모습이 보인다.

민웅이는 팔짱을 끼고 돌아다니는 승은이와 세인이 뒤에서 몰래 살금살금 다가가 투북~ 친 다음 픽 돌아서 도망치고, 승은이는 그 뒤를 쫓아서 왼손으로 민웅이의 뒷덜미를 낚아채고 오른손 바닥을 쫙 펴서 민웅이 등을 퍼헉퍼헉~ 소리 나게 때린다. 현국이와 형빈이는 형제처럼 팔짱을 끼고 연예인 이야기, 공부 이야기, 언제나 색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며 쉬는 시간 내내 어슬렁어슬렁 널찍한 교실 뒤를 걸어 다닌다.

경모는 귀여운 곰돌이처럼 걸음마를 하듯, 몸을 양옆으로 흔들며 씨익 웃는 얼굴로 교실 뒤를 걸어 다닌다, 유나는 쉬는 시간마다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채린이는 앉아서 묵묵히 책을 본다. 홍범이는 종이접기 책을 펼쳐놓고, 동생에게 준다면서 나는 절대로 따라 할 수 없을 것 같은 작은 공룡, 까마귀를 접는다. 가끔은 우리에게도 원하는 걸 접어주는데, 나에게는 어제 핑크색 종이로 예쁜 백조를 접어 주었다. 오리 배처럼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갈 것 같은 백조는 지금도 내 책상 서랍에 고이고이 모셔져 있다.

완혁이는 상상에 젖은 어린아이처럼 슈우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손을 들고 뛰면서 돌아다닌다. 예슬이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뿌와핫핫하! 신기하게 웃는다. 띠리리링~ 수업 종이 울리자 모두 서둘러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마음대로 놀았던 쉬는 시간은 이렇게 항상 끝이 같은 모습이다. 꼭 항구에서 휴식을 마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출항을 기다리는 선원들처럼 말이다!

쉬는 시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