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물 드세요!

Posted in 일기 // Posted at 2009/11/03 13:41
<꿀물 드세요!>
2009.11.01 일요일

"형아! 큰일 났어! 엄마가 너무 아파!", "뭐?" 영우가 내방으로 후닥닥 달려와 소리쳤다. 엄마는 아프셔도 보통 아프다는 내색을 안 하고, 한숨 푹 주무시면 쌩쌩하였는데, 이번 몸살은 아주 심하신 것 같았다.

엄마는 침대에 옆으로 누워서 이불을 두 겹씩이나 끌어 덮고, 몸을 부르르 떨며 인상을 찡그리고 계셨다. 엄마는 내가 온 걸 알고 눈을 반쯤 떠서 "허어어, 권 박사~ 허어어, 괜찮아~" 하고 간신히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가 너무 나직해서 공포스런 분위기가 났다.

나는 잽싸게 엄마 곁에 앉아 "네, 엄마 말씀하지 마세요!" 하며 이불을 열고 다리와 발을 주물러 드렸다. 엄마의 종아리와 발이 시체처럼 차갑고 핏기가 없었다. 나는 얼른 엄마의 머리를 짚어보고 천천히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입술이 핏기없이 새하얗고, 역시 머리가 뜨거웠다. 엄마는 계속 "으허우, 으허우~" 앓는 소리를 내셨다.

나는 엄마가 아파하는 소리에 속이 빠지직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새 영우는 울며불며, 부엌에서 일하고 계시는 아빠에게 "119를 불러요! 경찰도 불러요!" 하며 엉엉 울고 있었다. 아빠는 "약을 드셨으니 한숨 주무시게 기다려보자~" 하시며, 우리와 같이 엄마 다리를 주물렀다. 엄마는 우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다리를 주무르자, 물에 빠진 듯한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만 하라고 손을 저으셨다.

나는 엄마에게 몸에 좋은 무얼 먹여 드려야 될 것 같아서, 냉장고를 열고 감기약 코푸시럽을 만졌다가, 오메가3 라는 영양제도 만지작거리며, 으~ 어쩌나? 하며 갈팡질팡하다가 문득 아직 배우지는 않았지만, 국어 교과서에서 미리 읽어둔 <도깨비를 만났어도>라는 이야기에서, 도깨비들이 "아랫마을 부잣집 딸에게 쑥물을 만들어 먹이면 병이 나을 것을 멍청하게 다른 약만 짓고 있으니~"하는 구절이 퍼뜩 떠올랐다.

그런데 급한 대로 쑥물을, 꿀물로 대충 떠올리고 부엌으로 뛰어가, 수납장에 있는 예쁜 도자기 사발을 꺼내어 수돗물에 한번 씻고 생수를 부은 다음, 잡화 꿀이라고 쓰여있는 꿀병을 찾아 얼마 안 남은 꿀을 있는 힘껏 짜냈다. 꿀은 설사가 나오듯이 푸읍~ 푸부부부~ 터져 나왔다. 그런 다음 찻숟가락으로 천천히 잘 저었다. 꿀은 물보다 무겁고 뭉쳐서 잘 녹지 않기 때문에, 잘 저으면서 풀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찻숟가락으로 맛을 보았다. 으음~ 너무 달지도 싱겁지도 않은 맛이었다.

나는 두 손으로 사발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엄마! 엄마! 꿀물 드세요!" 하며 엄마방으로 갔다. 마침 엄마는 웃는 듯 우는 듯, 여러 가지 표정을 한데 섞어놓은 것 같은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일어나셨다. 내가 꿀물을 건네기가 무섭게 엄마는 꿀물 사발에 얼굴을 묻고, 한 번에 꾸끌, 꾸끌~ 소리를 내 마시고 난 뒤, 사발을 탁 내리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권 박사, 최고~!" 하며 활짝 웃으셨다. 나도 속이 트이는 것 같았다.

꿀물 드세요!

상우일기 - Sangwoo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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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루셀리언의 건조한 집 안 공기 정복하기! // 2009/11/03 20:37 [Del]
  1. seob

    처음부분은 좀 심각한것 같고, 끝은 재미있네요.^^

  2. 다리를꼰미남

    "권 박사, 최고~!"

  3. somigi0604

    진짜 상우 효자짓 한번 잘 했네 푸후후후
    울 어머니두 아프신데ㅠㅁㅠ
    난 뭐하는건지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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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을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하는 글이네요.
    안부 전화 드려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 Favicon of http://www.puwazaza.com BlogIcon 뿌와쨔쨔

    아..상우님의 마음씨에 감동 또 감동하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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