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먹어본 술

2009. 1. 28. 08:58일기

<처음 먹어본 술>
2009.01.25 일요일

오전 내내 엄마와 고모가 설날 제사상에 차릴 음식을 만드시고 나서, 점심 시간이 되었다. 어른들은 밥상을 차리고, 마지막으로 정수기 물통만큼 커다란 유리병을 어디선가 꺼내왔다.

그리고 그 안에 가득 담긴 진보라색 포도주를, 삼각주 모양의 폭이 좁은 투명한 컵에 조금씩 따라, 각자 밥상 위에 올려놓았다. 할머니의 식사 기도가 끝나고, 어른들은 '짜작!' 소리 나게 건배하고 포도주를 한 모금씩 마셨다.

나는 포도주의 진한 보랏빛에 자꾸 마음이 끌렸다. 포도 주스처럼 달고 시원한 맛이 날 것 같았다. 바로 내 옆에 앉은 엄마 포도주 잔을 보며 자꾸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뜻밖에 할아버지께서 "상우도 한 번 마셔 봐! 이다음에 술도 마실 줄 알아야 혀." 하시는 거였다.

나는 "네, 감사합니다!" 하며 기다렸다는 듯이 한 방울만 살짝 혀끝에 대어 보았다. 그런데 혀끝에 대자마자 눈처럼 없어져 버려서, 제대로 된 맛을 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밥을 반쯤 먹었을 때, '그래, 다시 한번!' 생각하며 엄마 포도주 잔을 잡아서 크게 한 모금 꿀꺽 들이켰다.

그러자 목안에 전깃줄을 심어 놓았다가, 갑자기 스위치를 켜서 빠지직~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목이 뜨거워졌다. 불타는 전류에 목은 찢어지는 것 같았고, 손목에도 불이 나듯 번뜩거리는 느낌이 왔는데, 머리끝은 띵~하고 얼어붙는 것처럼 얼얼했다. 나는 기습 공격을 받은 듯한 이 느낌이 불쾌해서 꺄악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는데, 할아버지와 어른들이 계셔서 참았다.

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할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다. "할아버지, 어른들은 왜 이렇게 맛도 없는 술을 마시는 건가요?", "그건 술을 한잔 먹으면 편안해지잖여? 스트레스도 없어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하고 싶은 말도 술술 하게 되는기라."

편안해지다니? 나는 할아버지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뭘 섞었길래 이렇게 맛이 고약할 수가 있단 말인가? 돼지 똥물보다 못하다! 신비롭고 예쁜 포도주 색깔에 배신당한 심정으로 포도주를 노려보는데, 어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몇 번씩 포도주를 꼴짝 꼴짝 마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