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는 어디로?

2009. 1. 10. 09:03일기

<치즈는 어디로?>
2009.01.08 목요일

오후 3시쯤, 오랜만에 반 친구 석희 집에 놀러 갔다. 석희랑 재밌게 역사책도 보고, 과학 이야기도 주절주절 나누며 놀다가, 갑자기 석희가 "배고프다!" 하였다. 나도 슬슬 배가 고파져서 따라서 '배고프다!" 했더니, 석희가 귀가 솔깃한 제안을 하였다.

"우리 라면 끓여 먹자~!" 나는 자신 있게 팔을 걷어붙이고 라면 끓일 준비에 들어갔다. 엄마가 끓일 때처럼, 부엌 붙박이장을 열고 라면 끓일 냄비를 하나 찾아내어, 구석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받았다.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불을 켜려고 하는데, 순간 불이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석희야, 미안한데 이 불 니가 켜주면 안 될까? 너무 무섭단 말이야!" 했다. 그랬더니 석희도 "싫어! 나도 무섭단 말이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코가 막힌 듯한 소리로 "제발, 석희야~ 그 대신 끌 땐 내가 끌게~!" 했더니, 석희는 마지못해 가스레인지 앞으로 걸어갔다.

"상우야, 여기 있는 가스를 키려면 어떤 레버를 돌려야 하니?" 나는 대답 대신 가스레인지 제일 왼쪽 레버를 가리켰다. 석희는 왼쪽 레버로 손을 뻗으며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불을 사용해 본 일이 없는 원주민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레버가 오래된 시계탑 바늘이 돌아가는 것처럼 끼리릭 소리를 내며 뻑뻑하게 돌아가더니, '틱틱틱 퍼억~!' 하고 불이 켜졌다. 나는 석희에게 해냈다는 표정을 지었고, 석희는 뿌듯해서 얼굴이 탱탱하게 물이 올랐다. 이제 우리는 라면 하나 끓이는 데도 축제 분위기였다.

내가 막 들떠서 "석희야, 내가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치즈 라면 끓여 먹자. 맛있어 보이더라!" 하니까, 석희도 "알았어. 하지만, 맛이 없으면 누구 탓?" 하였다. "알았어. 내 탓이야!"하고는 냉장고 속에서 치즈를 두 장 꺼냈다. 난 텔레비전에서 치즈 라면 끓이는 법을 제대로 다 본 게 아니라서, 그냥 맨 처음에 치즈를 넣어버렸다. 그랬더니 다 끓고 난 뒤엔 치즈는 라면 국물 속에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텔레비전에서는 치즈가 라면에 쫀득쫀득하게 들러붙어 있었는데 말이다.

라면을 그릇에 담아 스르릅~ 삼키면서, 나는 석희에 얼굴을 살폈다. "이거 맛 좋지 않니?" 석희는 럽쩝쩝~ 열심히 먹으면서 "응, 맛있네. 그런데 치즈는 다 어디로 갔다니?" 하였다. 라면을 다 먹고 국물을 마시려 하니, 국물 색이 묽은 똥물 같았다. 그리고 국물에서 텁텁하고 짠 우유 맛이 났다. 우리는 국물까지 다 마시고 부른 배를 만지며 뒤뚱뒤뚱 뒷정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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