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를 헤치며

2008. 10. 10. 08:52일기

<안개를 헤치며>
2008.10.09 목요일

오늘 아침은 안개 때문에 숨이 막혔다. 아파트 입구를 벗어나 곧게 뻗은 통학 길을 따라 걷는데, 차가 다니는 길을 끼고 오른쪽에 마주한 아파트 3,4단지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어도 답답했다. 안개 괴물이 세상을 집어삼킨 건 아닐까?

자세히 보니 아파트 아랫부분은 조금 보였지만, 안개가 많이 낀 아파트 위쪽은, 뿌연 구름이 걸려 버린 것처럼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컴퓨터 게임에서 본 하늘성 (제9의 사도 바칼이, 하늘 세상을 지배하려고, 바다 마을에서 계단을 이어서 하늘까지 쌓아올린 탑) 같았다.

사방을 둘러싼 안개속에서 학교 가는 아이들의 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와~ 안개 정말 짙다! 이거 천재지변 아니야?" 바로 코앞에 아이는 보였지만, 멀리 앞서가는 학생들의 모습은 안개에 가려서 가방만 보였다가, 목만 보였다가, 다리만 보였다가 하였다. 특히 땅바닥엔 아이들 신발이 안개에 가려서 뭉툭한 발목만 걸어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안개속을 걷는 내 몸도 점점 흐릿해져서, 어느 순간 어깨에 멘 가방과 신발 주머니까지 수증기가 되어, 안개와 똑같아질 것 같았다. 학교 올라가는 언덕도 고원 지대처럼 온통 안개 투성이였다. 안개 너머로 언뜻언뜻 보이는 높은 학교 건물의 윤곽이 신기루처럼 신비하게 보였다.

학교 언덕을 올라갈 땐 눈먼 사람처럼 손으로 안개를 막 헤치며 걸어 올라갔다. 눈을 감아도 하얀색, 눈을 떠도 하얀색이었다. 나는 에베레스트 산맥을 탐험하는 산악인이 된 기분으로, 심호흡을 하며 안개를 먹었다. 갑자기 뒤에서 안개 때문에 뒤처진 영우에 목소리가 헉헉 들렸다. "형아, 같이 가~!"

짙은 안개속에서 누가 영우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영우의 예쁜 눈 만큼은 알아볼 수 있었기에, "자, 어서 와!" 하고 안개속으로 내민 손을 덥석 잡아끌었다. 그런데 손을 잡은 아이는 여자 아이였다. 그 아이가 "까악~ 납치범이다!" 하며 놀라자. 나도 놀라서 손을 뿌리치고 "미안, 내 동생인 줄 알고 실수!" 하였다.

무사히 교실에 도착해 창밖을 바라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는 완전히 다른 세상 같았다. 창밖으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고 척 일어나 '이얍~' 하고, 주먹을 뻗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무중력 세상 같았다. 하지만, 나는 햇빛이 비치는 시원한 세상을 그리워하며 수업 준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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