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린 할머니

2008. 10. 7. 08:38일기

<암에 걸린 할머니>
2008.10.05 일요일

며칠 전부터 나는 우울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대구에 입원해 누워 계신 할머니를 만나러 가셨기 때문이다. 나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아직 남은 감기 기운이 할머니께 좋지 않을까 봐 참고 다음번에 찾아뵙기로 하였다.

할머니가 암이라는 소식을 듣고 나는 쇠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멍했다. 그리고 '분명 이건 꿈속에서 들은 소식일 거야. 이 꿈이 깨면 나는 침대에 누워 있을 거고, 학교에 가야 할 거야, 그러면서 나는 휴~ 내가 악몽을 꾸었구나! 하고 안심할 거야!'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나는 3년 전 외할아버지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가슴이 무너지듯 놀랐다. 다행히 외할아버지는 고비를 넘기셨고, 꾸준히 치료를 받아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지만, 이번에는 왠지 무서웠다. 내가 아는 가장 위험한 병중 하나인 하필 암에 걸리셨다니!

할머니 배속에 혹이 생겨 수술하러 가셨는데, 난소에 암세포가 번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 난소와 나팔관과 자궁을 다 들어내고 림프관까지 잘라내느라 4시간 동안 수술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2주 후에 나오는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계신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어지러웠다. 아빠랑 할아버지께서 사이가 나쁜 것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 얼굴을 10번 정도나 보셨을까? 그것 때문에 병이 나셨을까? 불쌍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엄격하시고, 할머니는 집안일을 많이 하셨다. 내가 어릴 때 할머니 댁에서, 엄마가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것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고 나를 덥석 안고 나가셨다고 한다. 내가 커서 그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무 옛날식으로 사시는 할머니를 엄마는 어려워하셨고, 외아들인 아빠와 옛날 사람처럼 무뚝뚝한 할아버지는 서로 불만이 많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친가에 갈 때마다 늘 썰렁한 분위기에 숨을 죽이면서 답답해했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할수록 마음속에서 끝없는 서글픔과 한숨이 밀려나온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께 암에 걸린 것이 자꾸만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조금만 일찍 태어나서, 빨리 어른이 되어 의사가 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반드시 암을 치료하는 약을 만들어 할머니를 낫게 해드리고 싶은데, 너무 늦어버리면 어떡하나?

4살 무렵 추석 때, 할머니와 함께 송편을 만들었었다. 송편 만드는 법을 처음 배우고, 할머니 무릎에 누워 잠을 잤는데, 그때 할머니 무릎은 엄마 무릎보다 더 포근하였다. 다시 그 무릎에 누워 잘 수 있을까? 할머니가 다시 나와 함께 송편을 만드실 수 있을까? 갑자기 눈물이 솟구치고 온몸이 떨린다. 지금까지 할머니와 짧은 기억들이, 달랑 짧은 기억으로만 남는다면? 안돼! 할머니, 꼭 나으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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