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찾아온 숭어

2008. 10. 2. 08:42일기

<교실에 찾아온 숭어>
2008.10.01 수요일

나는 어제 감기가 심해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쌀쌀한 아침, 쿨룩쿨룩 기침이 터질 때마다, 물병에 담아온 보리차를 마셔가며 걸었다. 우리 반 교실로 향하는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어디서 리코더 합주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건 우리 반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상하다! 오늘은 리코더 가져오는 날이 아닌데? 교실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전부 리코더로 슈베르트의 '숭어'를 불고 있었고, 선생님께서 우드블록으로 딱딱 박자를 맞춰주고 계셨다. 내가 어리둥절해하니까 우리 모둠 아이들이 "오늘 지금까지 우리가 연습한 숭어, 촬영하는 사람들이 와서 찍는 날이야!" 하였다.

우리 반은 지난 4개월 동안 음악 시간과 쉬는 시간, 짬짬이 '숭어'를 리코더로 연습해왔다. 학교 예능 행사로 연습해왔는데, 아마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인 듯했다. 그러나 나는 지난 시간, 리코더를 세 도막으로 분리해 장난치다가 리코더의 맨 끝 부분을 집에 두고 온 걸 알고 난처했다. 끝 부분이 없어진 짤막한 리코더로 어떻게 연주를 해?

선생님께 가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리 준비해 둔 리코더를 하나 내어주셨다. 그리고 아직 악보를 다 외우지 못했다고 하였더니 "그래? 그러면 악보를 보고 하여라!" 하셨다. 가만히 보니까 아이들 대부분이 악보를 보고 하였다. 1교시 수업을 30분 하고, 나머지 시간과 쉬는 시간까지 이어서, 우리 반은 마지막 '숭어' 맹연습에 돌입했다.

우리의 '숭어'는 새들이 내는 소리처럼 일정한 박자를 맞추면서도, 새들보다 더 많은 멜로디를 내면서 곱고 낭랑하게
사방에 울려퍼졌다. 가장 높은 음인 테너와, 낮은음 엘토, 그리고 내가 내는 기본 멜로디 소프라노 파트가 함께 섞여 물결을 타듯 흘렀다. 선생님께서 "음, 이 정도면 잘되겠는데!" 하시면서, 촬영할 때 아이들 모습을 잘 비치게 하려고, 떨어진 모둠 아이들을 골고루 모아서 붙여 앉게 하셨다.

2교시 시작과 동시에 6학년 누나 2명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들이닥쳤다. 회장 수빈이와 부회장 시현이가 앞에 나가서 인사말을 하는 걸 찍으려는데, 나도 모르게 갑자기 기침이 터져 나왔다. 컬럭컬럭 쿨룩쿨룩 켁켁켁~ 한번 터져 나온 기침은 그칠 줄을 몰랐다. 나는 얼굴이 시뻘개져 가지고 기침을 막으려고 목을 잡고 씨름을 하는데,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쿨렁쿨렁 기침을 따라했다.

선생님께서 "자, 자, 이제 조용히! 이제 촬영 시작한다~!" 하시고, 다시 수빈이가 '숭어'를 불 거라고 이야기하고 드디어 우리는 '숭어' 연주에 들어갔다. 모두 눈을 리코더를 향해 아래로 내리깔고, 입은 동그랗게 리코더를 물고 꼭 계란 같은 모양으로 '숭어'를 불었다. 나는 물을 타고 헤엄치는 숭어가 된 기분으로 연주 속에 빠져들었다. 정말 숭어가 우리 반 교실로 찾아올 것 같았다.


    <어릴 때(7살) 그린 물고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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