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를 위하여

2008. 5. 7. 21:38일기

<꼴찌를 위하여>
2008.05.06 화요일

5일간에 기나긴 휴일이 끝나고 다시 학교 가는 날이다. 그리고 오늘은 운동회 날이기도 하고! 무거운 책가방은 벗어던지고, 모자를 쓰고 물병만 달랑 손에 들고 가니 발걸음이 가볍다 못해, 붕 뜨는 것 같았다.

아직 교실에는 아이들만 몇몇 와있고, 선생님은 안 계셨다. 나는 김훈이라는 아이와 미국 광우병 수입 소 이야기로 한숨을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선생님께서 쌩하고 들어오셔서 칠판에 '운동장으로 나가기'라고 적어놓고 다시 급하게 나가셨다.

운동장에는 벌써 많은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우리는 교장 선생님 연설을 듣고, 국민 체조를 하고 본격적으로 운동회에 돌입하였다. 오늘은 소 체육대회라서 그렇게 많은 행사는 없었다. 줄다리기, 각 반에서 모둠 나누어 달리기, 청백 계주, 이렇게 3가지만 하였다.

반 달리기가 시작되자, 우리 반은 조별로 차례를 기다리며 스텐드에 앉아 있었다. 멀리 학교 운동장 담벼락위로, 웅장하게 펼쳐진 천보산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는데, 산 위에서 어떤 아저씨 둘이 오줌을 누는 모습을 보고, 나도 아이들도 꺅~ 소리를 지르며 몸서리를 쳤다.

드디어 스텐드에서 내려와 운동장으로 나가자, 나는 불안해서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도 백지장처럼 변하는 것 같았다. 맑았던 하늘도 내 마음처럼 구름이 깔리고, 점점 어두워져 갔다.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나는 이를 악물고 요란한 "탕!" 소리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은 똑같이 발을 내딛고 힘차게 튀어나갔는데, 나는 발이 쓱 미끄러지면서 출발부터 삐끗하였다. 나는 두 팔을 권투시합을 하듯이 아래위로 막 휘두르며, 코뿔소처럼 씩씩 숨을 몰아쉬며 달렸다. 하지만, 아이들은 눈앞에서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점점 힘이 빠지고, 실룩거리는 엉덩이도 무겁게만 느껴졌다.

결승점 줄을 잡은 선생님들께서 내가 뛰는 모양을 흉내 내, 허리를 구부리고 웃으면서 어서 오라고 손짓하셨다. 결국, 나는 옛날처럼 꼴찌였다. 어깨가 축 쳐져서 자리로 들어오는데, 우리 반 대표 계주 선수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괜찮아, 너무 속상해 하지 마! '꼴찌를 위하여!'란 노래도 있잖아!" 순간 기운이 나면서 구름 사이로 다시 해가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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