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논이 좋아!

2008. 2. 26. 11:21일기

<캐논이 좋아!>
2008.02.25 월요일

내가 파헬벨의 캐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 이맘 때쯤, 피아노 학원에서 연주회를 앞두고 어떤 형아가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나는 캐논이 너무 좋아 그 형아가 연습할 때면 장난치던 것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워 듣곤 하였다.

캐논을 듣고 있으면 내 몸이 비누 거품을 타고 둥둥 가볍게 저 하늘로 멀리멀리 날아오르는 기분에 사로잡혀 행복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1년 뒤에 돌아올 연주회에는 꼭 내가 캐논을 칠 수 있기를 바랐었다.

연주회가 다시 다가왔고 선생님께 캐논을 지정곡으로 받았을 때, 난 이게 웬 하늘의 계시란 말인가 하며 흥분했다. 그런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아직 나에겐 어려운 곡이었는지, 치기가 너무 어려웠다. 박자를 맞추기도 어렵고 음을 정확하게 누르는 것도, 찾지 못하는 길처럼 까다롭기만 했다.

게다가 나는 손가락이 짧은 편이라 옥타브를 칠 때는 손가락을 찢어질 듯이 벌려도 한 옥타브를 다 채우지 못했다. 결국, 선생님께서도 너무 무리인 것 같으니 내게 맞는 조금 쉬운 곡으로 바꾸자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캐논을 치겠다고 우기며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는 연습 또 연습하였다.

지난 토요일 저녁, 청소년 수련관에서 연주회를 무사히 마치고 이렇게 일기를 쓰니, 캐논을 알게 된 날부터 직접 피아노로 연주하게 되기까지의 날들이 한 편의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스쳐간다. 나는 백 년 전 파헬벨 아저씨가 캐논이란 곡을 만들었을 때,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며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내가 쳐보니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캐논은 결코 가벼운 곡이 아니다. 그 반대다. 나는 연주하면서, 작은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노를 젓는 인디언 소년을 떠올렸다. 그 소년은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긴 채, 두려움과 설레임을 안고 이 강의 끝은 어디일까 상상하며 노를 젓는다.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 강물의 끝을 바라보며 바람도 만나고 햇빛도 만나고, 강가에 사는 많은 생물도 만난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물살은 빨라지고 배도 심하게 흔들거리며 소년은 폭포 앞까지 도달한다. 배가 폭포에 휩쓸려 떨어지려는 찰나에 소년은 간신히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목숨을 건진다. 그리고 나무 꼭대기 위로 올라가 발밑에 펼쳐진 바다를 보게 된다. 한없이 넓고 따뜻하고, 은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캐논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