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22 화요일
어제 있었던 가벼운 발목 부상에도, 오늘은 눈이 더 많이 와서 우석이 생각이 간절했고, 같이 눈 장난이라도 실컷 해보고 싶어서, 피아노 학원 마치고 우석이 집을 찾아갔다.
나는 우석이를 놀라게 해주려고 공원 여기저기서 눈을 모아, 크고 둥그런 눈 뭉치를 만들어 가슴에 안고 가서 우석이네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우석이 동생 서진이가 먼저 반갑게 "상우 오빠야?" 하며 달려나왔고, 우석이도 "상우니?" 하며 눈이 구슬만큼 커져서 나를 맞아주었다.
넙적한 눈사람을 마당에 내려놓고 집안으로 들어갔더니, 우석이와 서진이가 냉동고를 열어서 자기들이 만든 꼬마 눈사람을 보여주었다. 내가 "얘들아, 우리 눈싸움하러 가지 않을래? 눈사람도 만들고!" 했더니, 우석이가 엉덩이를 긁적거리며 "상우야, 우리 라면 끓여 먹지 않을래? 나가서 신나게 놀려면 잘 먹어야지!" 했다.
우석이는 엄마가 혼자 있을 때 손 다칠까 봐, 손잡이에 은박지를 감아둔 냄비를 꺼내어 물을 붓고 가스 렌지를 띠리릭 켰다. 물이 끓기 시작하니까 주방 서랍에서 해물 라면 두 개를 꺼내어 봉지를 뜯어놓고, 라면수프를 먼저 따서 수프 봉지를 손으로 비비면서 뿌려주고, 라면을 후두둑 반으로 갈라서 집어넣었다. 잠시 뒤에 짭짤하고 구수한 라면 냄새가 온 방 안에 퍼졌다.
나는 우석이가 라면 끓이는 모습을 보며 놀라움과 존경심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고작 해야 과자 봉지를 따먹거나, 즉석식품을 전자 렌지에 데워 먹는 것밖에 안 해봤는데, 어쩜 저리도 듬직하게 라면을 끓일 수가! 나는 우석이를 도와 상을 펴고 밑받침을 놓고, 우석이가 그 위에 라면 냄비를 올려놓았다.
우석이와 서진이는 라면을 접시에 덜어 먹고, 나는 그냥 냄비 채로 먹었다. 우리는 먹는 동안은 아무 말 없이 후루룩후루룩 라면만 먹었다. 라면이 어떤 부분은 꼬들꼬들하고, 어떤 부분은 익지 않아 단단했지만 그래도 기가 차게 맛있었다.
나는 우리가 전쟁통에 피난 중인 세고아인데, 잠시 비바람을 피해 움막을 치고, 제일 큰 형아인 우석이가 동생들을 위해 라면을 끓여 먹이며 배고픔을 달래는 중이라고 상상하며, 국물까지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마셨다. 다 먹고 나오니, 그사이 바깥세상은 눈이 더 많이 내려 하얀 왕국을 이루었고, 우리 셋은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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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이네요^^ 갑자기 라면 먹고 싶어지네요^^
2008/01/23 15:00안녕하세요? 로카르노님, 또 만나서 반가와요! 따뜻한 라면 덕분에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도 하다가 또 옷을 다 버리고 말았어요. 손은 부르터서 빨갛게 동상이 조금 걸렸고요.^^
2008/01/23 16:13어느 음식소개보다도 더 라면을 먹고 싶게 만드는 글이네요.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역시 추억과 함께하는 라면이군요.
2008/01/23 17:21페이비안님 말씀이 옳아요! 추억과 함께 하는 라면이라! 멋있어요!
2008/01/23 21:04표현이 정말 실감나시는 것 같아요. 우두둑 후루룩 짭잘하고 구수한 라면 표현이 정말 좋네요.저는 소년 조선일보에 나와서 들오왔는데 정말 표현이 좋아요~!! 전 이것을 읽으면서 곰곰히 왜 우리 엄마는 불을 못쓰게 하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ㅠㅠ
2008/02/23 10:13우리 엄마도 불을 못쓰게 하는건 마찬가지랍니다. 손에 델까봐 그러신 거겠죠.^^
2008/02/23 11:26상우님 안녕하세요. 우리 여섯살된 아들내미 이름도 우석인데, 상우님의 제일 좋은 친구 이름도 우석이군요. ^^ 반가운 마음에 글 남깁니다. 글 잘 보고 가요. 우리 우석이에게도 상우님 같은 제일 좋은 친구가 생기기를 바래봅니다.
2008/03/19 15:51네, 반갑습니다. 저도 아드님이 잘 크셔서 좋은 친구 많이 많이 사귀기를 바랄게요.^^
2008/03/19 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