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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일생

일기 2008/01/22 18:48 by 상우
<구사일생>
2008.01.21 월요일

피아노 학원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께서 잘했다고 주신 젤리를 냠냠 먹으며 돌아올 때, 공원에 쌓인 눈이 나뭇가지로 새어들어 오는 햇살을 받으며 짠 녹고 있었다. 그러자 공원 길 전체가 이제 막 녹기 시작한 거대한 얼음 덩어리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았고 무지 미끄러웠다.

나는 문득, 지금은 방학이라 한동안 가보지 않았지만, 학교 다닐 때 우석이랑 잘 다녔던 우리만의 지름길인 가파른 언덕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언덕은 풀이 많고 몹시 경사가 험해서, 한번 발을 내딛으면 중력의 작용 때문에 높은 곳에서 아래로 쉬지 않고 굴러 떨어지는 사과처럼, 단숨에 와다다다 멈추지 않고 아래로 뛰어내려 와, 우리 집과 우석이네로 갈라지는 길 위에 떨어지게 된다.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하얀 눈이 햇살을 반사해 눈이 부시며 그렇게 푹신푹신해 보일 수가 없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한 발 내딛다가, 두 발 내디뎠을 때, 얼음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오른쪽 다리가 붕 뜨면서 나는 "으어!" 하며 뒤로 발라당 누워버렸다. 그때부터 쉬지 않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어찌나 빠른지 고래 뱃속으로 막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몸이 부들부들 흔들리며 내려오다가, 김말이처럼 한 바퀴 굴렀을 때, 장갑 한 짝이 벗겨져 나간 것을 알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바위 옆을 스쳐갈 때 눈에 띈 라면 박스를 잡아 잽싸게 엉덩이 쪽으로 밀어 넣었는데, 그것도 다시 쏙 빠져 나가버렸다. 어떻게든 멈추어보려고 두 발을 이용해 필사적으로 땅을 짚었지만 내 몸은 컴퍼스처럼 뱅글뱅글 돌면서 미끄러져 내려오다, 결국 눈더미 속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러나 눈을 털고 일어나서 잃어버린 장갑 한 짝을 찾으러 다시 씩씩거리며 언덕 위를 기어올라갔다. 그 장갑은 우리 엄마 장갑이다. 눈 속에 빠져있는 장갑을 주워 내려올 때, 또 발을 헛디뎌 이번에는 엎드린 채로 "으어어어!" 비명을 지르면서 사정없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흙탕물과 마른 풀과 얼음 눈이 뒤섞여 흠뻑 젖어버렸고, 온몸은 뻐근하고, 일어서니 발목이 시큰거렸다. 나는 다친 데가 없나 살펴본 다음, '어쨌든 살아났잖아! 바위에 안 부딪힌 게 다행이야!' 생각하면서 옷을 좀 털어내었다. 그런 다음 절뚝절뚝 거리며 장갑을 씻으러 약수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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