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에서 술래잡기

2008. 1. 16. 18:16일기

<사법연수원에서 술래잡기>
2008.01.15 화요일

 우리 가족은 사법연수원 졸업생 가족 대기실을 찾아 허둥지둥 뛰어갔다. 제2교실에서 수료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막내 삼촌을 찾아보려고 애썼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교실 입구부터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어서, 뚫고 들어가기가 힘들었고, 어른들 키에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영우 손을 꽉 잡고 단단한 돌을 밀어내듯이 사람들 사이를 헤쳐나가, 고개를 자라같이 쑥 내밀고 교실 안을 둘러보았다. 졸업생들이 수료증을 받으려고 책상 앞에 대기하고 앉아 있다가, 이름이 불리면 차례대로 교탁 앞으로 나와 수료증을 받았다. 하나같이 양복을 입고 있어서 다 삼촌같이 보였다.

삼촌은 뒷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놀랍게도 우리를 먼저 알아보고 번쩍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치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삼촌은 조금 긴장을 했는지, 자기 차례가 아닌데도 먼저 나왔다가 아닌 걸 알고 쑥스러워하며 다시 들어갔다. 졸업생이 수료증을 받을 때마다, 따라온 가족 부대들이 천둥처럼 박수를 치고 난리였는데, 우리는 참석한 가족이 별로 없어서 박수 소리가 모기소리만 했다.

그래서 나는 영우 귀에 대고 '영우야, 삼촌 축하해요 라고 죽어라 외쳐!' 하고 속삭였다. 삼촌 이름이 호명되자, 영우와 나는 "축하해요! 삼촌! 마구 축하해요! 사랑해요!"라고 외쳤다. 수료식이 끝나고 가족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대강당 앞에서 삼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영우랑 나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하였다.

엄청나게 큰 건물 안의 기둥과 안내판, 조각, 시계탑, 거기다 사진 찍으려고 모여있는 사람들 무리까지 숨을 곳이 너무 많아서, 이보다 더 좋은 술래잡기 놀이터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구석구석 숨을 곳을 찾아다니다가, 안내판 뒤, 낡은 텔레비전과 책상, 의자들이 쌓여 있는 비밀스런 방에 숨기도 하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와 문이 열리자, 기다리고 있던 영우에게 붙잡혀 다시 술래가 되었다.

"얘들아! 가만있지 못해?" 하고 외치는 화난 엄마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우리는 꺅꺅 소리 지르며 땀이 흠뻑 젖도록 쫓고 쫓기었다. 나도 모르는 아주 깊숙한 곳까지 숨었다가 삼촌이 돌아온 걸 알고 슬금슬금 기어나왔다. 외할아버지께서도 손가락을 높이 드시며 "학생이면 점잖게!" 하셨다.

가족들이 연수원 건물 밖으로 나가 사진 찍기 좋은 곳을 찾아 이동할 때도, 영우랑 나는 술래잡기를 하느라 가족들의 눈을 벗어났다 나타났다 하였다. 결국, 눈이 녹지 않은 잔디밭 속으로 숨을 곳을 찾아 뛰어다니다 꽝 넘어져서 바지가 흠뻑 젖어버렸고, 아빠한테 엉덩이를 펑펑 맞고 나서야 술래잡기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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