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26 외할아버지

2007. 9. 26. 00:00일기

<외할아버지>
2007.09.26 수요일


우리는 배 한 상자와 스팸 한 상자를 가지고 외가댁으로 향했다.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이 가벼워서, 끔찍하게 차가 막혔던 어제 일이 꿈만 같았다.

대문에 들어섰을 때 할머니 풀밭의 식물들이 모두 다 전보다 푸릇푸릇하게 일어서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방 문이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할아버지가 웃고 계셨다. 너무 심하게 웃으셔서 볼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헐렁해 보이셨다.

하회탈
내가 인사를 드리니까 할아버지는 계속 하회탈처럼 웃으시며 "오야, 오야." 하셨다. 이제 할아버지는 아파 보이지 않았고, 행복해서 얼이 약간 빠져 보이셨다. 그리고 그 행복의 원인인 할머니가 나오셔서 "아이고, 우리 상우, 영우 왔네!" 하고 명랑하게 외치셨다.

할머니는 노랑색과 주황색이 구불구불 섞인 그물같은 옷을 입고 고기를 삶고 계셨다. "이거 진우네가 제주에서 가지고 온 돼지 고기여." 따뜻하고 연한 제주도 고기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고 가족들은 둘러 앉아 할머니가 차려주신 고기와 만두를 짭짭짭 먹었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흐뭇하게 웃고 계셨고, 방 한구석에 내 턱만큼 커버린 벤자민 나무가 우뚝 서서 할아버지 대신 '오랜만에 왔구나. 많이 먹어라.' 하는 것 같았다.



외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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