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산 가는 길

2012. 1. 29. 00:41일기

<아소산 가는 길>
2012.01.25 수요일

나는 아소산의 정상에 올라갔다가 죽을 뻔하였다. 일본의 날씨, 정확히 최남단 규슈의 날씨는 서울의 날씨보다 훨씬 따뜻하였다. 구름 한점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하늘에서는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구정 연휴에 대구에 내려갔다가 할아버지, 할머니, 큰고모 가족, 둘째 고모 가족, 막내 고모 가족, 그리고 나와 영우, 이렇게 전 가족이 일본 후쿠오카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가게 일 때문에 아빠, 엄마는 가지 못하셨다! 나는 후쿠오카로 가는 배 위에서 거센 높이의 파도에 대항하듯이, 파도를 눈 부릅뜨고 바라보느라 다른 가족 다 하는 배멀미도 하지 않았다. 칼데라 화산으로 유명한 아소산 입구에 모인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아소산 가는 길



하지만 기상 상태는 점점 더 안좋아지고, 하늘에는 하얗고 낮은 구름으로 꽉 차서 눈이 펄펄 날리는, 그러나 춥지 않은 기묘한 날씨가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를 인솔하던 가이드도 날씨가 계속 안좋아지면서 예정되있던 아소산 관광은 힘들 것 같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관광이 안된다는 통보는 계속해서 오지 않았다. 우리는 저 멀리에 보이는 어렴풋한 아소산을 향해 버스를 타고 출발하였다!



버스 안의 관광객들은 대부분 피곤했는지 잠을 청하고 있었다. 오로지 나와 영우만 버스 창문에 눈을 딱 붙이고, 차창 밖의 풍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소산에는 나무가 없고 건조하고 키 작은 풀들만 무성했다. 유명한 소와 말의 벌목지라고 해서 나와 영우는 소와 말을 눈 씻어가며 찾았다. 그러나 그 넓은 언덕에 말과 소는 딱 한 번씩만 나타났다. 아니, 어느 순간부터는 짙은 안개가 껴서 사방이 보이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데 안개까지 자욱하게 깔리니 꽤 으슬으슬하고 무서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굴부굴 꼬부라진 산길을, 짙은 안개와 궂은 날씨 속에서 안전운전하신 운전기사 아저씨가 놀라울 따름이다. 일본어를 잘 모르고 어색하여 감사 인사를 전하지 못했는데, 뒤늦게나마 아저씨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날씨 탓에 버스나 도보로는 산정상에 갈 수가 없어 우리팀은 케이블카를 타기로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케이블카를 타 본 적이 없는데, 일본에서 눈이 몰아치고 안개가 자욱한 날씨에 온천수가 올라오는 아소산 정상에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다! 나는 너무 설레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산정상에 가까워져서 그런지 살이 벌벌 떨리고 오드라지게 추웠다. 입술부터 식도까지 얼어버릴 것 같은 날씨였다. 마침 목이 말라 바로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따뜻한 음료를 찾았다. 음료의 맛은 영어로 읽거나 그림을 보고 대충 알아맞출 수 있었지만, 무엇이 따뜻하고 무엇이 차가운 지를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일본어를 잘하는 사촌, 정욱이 형에게 물었다. "형아, 어떤 게 차가운 음료고, 어떤 게 따뜻한 음료에요?" 형아의 대답은 간단하였다. "빨간색으로 써있는 게 따뜻하고, 파란색으로 써있는 게 차가워!"

자판기 따뜻한 음료의 가격은 150엔! 일본에 와서 헷갈린 게, 엔과 원 구분이 어려워 초등학교 바자회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환률이 우리나라의 14, 15 배라는 말을 듣고 놀랐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 15년 만에 처음 해보는 해외 여행 일본, 언제 다시올 지 모르는 규슈의 활화산 아소산에서 인색해지기는 싫었다. 그런데 어느새 정욱이 형아가 내 음료를 뽑아주어서 나는 "형, 감사합니다!" 말하며 냉큼 받아먹었다. 형아가 사준 조지아 캔커피는 꽁꽁 언손을 녹여 주는 손난로 역할을 하였다. 따뜻한 캔을 잡고 있으니 손부터 시작하여 온몸이 스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케이블카 출발 시간이 되었고, 나는 사람들을 따라 휩쓸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케이블카 안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앉으시고, 다른 가족들은 창밖으로 몸을 돌려 "우와~!" 탄성을 질렀다. 케이블카는 바닥과 천장을 빼고는 모두 야외가 보이는 유리였다. 밖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안개로 자욱해서 이 작은 유리로 만들어진 케이블카가 안전할까? 의심스러웠지만, 이미 케이블카는 아소산의 정상을 향해서 서서히, 그야말로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얇은 유리 밖의 풍경은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땅인지 모를 정도로 온통 새하얗기만 하였고, 정말로 하얀 어둠 속을 뚫고 지나가는 것처럼 아찔했다.

가슴을 졸였던 케이블카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유리 밖 세상으로 나가니 따뜻한 잠바가 아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눈바람이 휘몰아쳤다. 바람도 푸취~ 푸취~ 소리를 내며 터질 듯이 불었고, 눈은 또 어찌나 심했는지! 가만히 있어도 바람이 불어오는 왼쪽 어깨와 바지에는 눈이 하얗게 잔뜩 붙어서 설인처럼 변하여, 누가 누군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눈사람이 되어가는 산 위에서 활화산의 풍경은 커녕, 내 발도 잘 볼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여기가 정상은 아니고, 몇 십미터 정도만 걸어가면 있다는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적마다 바람이 내 바지를 잡아끌었고, 집고 가라고 써 있는 나무 막대기를 들고 나는 다시 한걸음, 한걸음 발을 내딛었다.

지금은 화산 가스 주의보가 발령되어 있는데 건강한 일반인은 괜찮지만, 폐렴이 있는 사람이나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주의해야 될 정도의 화산 가스가 나온다는 것이다. 화산 가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부탄가스 정도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해서, 살짝 들이마시는 걸로 영원히 일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에 폐렴을 앓았었고, 아주 건강한 것도 아니었지만, 용기를 내서 산 정상을 향해 성큼성큼 발을 내딛었고, 산정상에 제일 먼저 도착하였다. 내가 동네 뒷산에 꼭대기에 올라 늘 하는 것처럼 허리를 쫙 펴고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너무 추워서 이빨이 드드드득~ 떨리고, 몸을 제대로 펼 수가 없었다.

문득 내가 7살 땐가, 제주도 성산봉 꼭대기에 죽을똥 살똥하며 올랐던 생각이 스쳐갔다. 그때는 여름이었고, 무언가를 잡지 않으면 작은 몸을 훨훨 날려버려, 장난감처럼 검푸른 바닷물에 퐁~하고 빠트릴 것 같았던 제주도의 험악한 바닷바람과, 정상에서 바라보았던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생각났다. 지금은 1월이구나! 안경에도 눈이 내려서 앞이 점점 더 보이지 않았고, 엄청나게 눈이 휘날린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화산의 진짜 천연 온천물은 볼 수가 없었다. 기도와 폐가 언 듯, 잔기침이 콜록콜록콜록~ 쉴 새 없이 터져나와서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쫓기듯이 벌벌 떨면서 들어와야 했다. 사진을 찍으면 뭐하랴? 온통 새하얀 것 밖에 없는 걸!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아직도 차가움에 벌벌 떨고 있는 몸을, 자판기 커피 음료를 뽑아 녹이고 이번에는 정욱이 형아에게도 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