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보내며

2014. 12. 26. 21:23일기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2014.12.26 금요일


크리스마스가 조용히 흘렀다. TV에서 틀어주던 '해리포터'나 해마다 우려먹는 '나홀로 집에' 같은 구닥다리 특선 영화가 아니었다면, 개교기념일인지 크리스마스인지 구분도 안 될 휴일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오랜만에 할 일 없이 누워서 얼마 안 남은 올해와 그동안 지난 시간을 생각해 본다. 이러저러한 핑계로 블로그에 글 쓰는 걸 게을리했기에 몇 편 안되는 글이지만, 한편 한편, 쓸 때만큼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무렵부터 지금까지, 나는 타자를 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하는 시간이 많았고, 손에 연필을 쥐고 글을 썼던 더 어릴 적을 생각하면, 글을 쓰기 위해 몰두한 시간이 내 생활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만큼 놓친 것도 분명 있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나는 바깥에서 또래들과 어울려 노는 것보다 어두운 방안에서 연필로 뭔가를 쓰거나 책을 읽는 것을 선호했다. 두자리수 나이가 되기 전에는 내가 또래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날 만큼 사람과 관계를 맺는 건 항상 불안했다.


그동안 글자하고 사귀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쓴 탓일까? 먼저 나서서 스스로 어울려 보려고 부단히 애쓴 적도 있는데 생각한 것처럼 쉽지가 않았다. 말을 걸기 전에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울까? 어떻게 해야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입을 틀어막았고, 어렵게 튼 대화의 도중에도 항상 편하지가 못했다. 항상 다음에 어떤 말을 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갈까? 생각하니 머리 아팠다. 그래서 그냥 어느 순간부터는 인정했다.


나는 선천적으로든, 아니면 글을 많이 쓰느라 그렇게 됐든 친구를 많이 사귀기는 글렀다고... 글쓰기와 친한 대신 사회적인 면을 바꿔먹은 거로 생각했고, 그 생각을 인정하는 게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항상 주위에 한두 명 정도는 친한 친구가 있었고, 대화할 때 걱정 없이, 그냥 생긴 대로 나오는 대로 말할 수 있던 게 좋아서 그 한두 명의 친구에게 언제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친구와 흔한 약속 하나 없이 노트북 앞에 앉아 있지만, 이건 나의 선택이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기쁨의 여유가 없다. 나의 개인적인 삶에서도 고2가 되는 시점이, 수능과 대입으로부터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시점이 마냥 즐겁기는 어렵고, 누군가는 거리의 불빛 속에서 사랑하는 이와 시간을 보낼 때,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삶을 포기할 수 없어 해고를 철회해 달라고 70m 공장 굴뚝 위에 올라가 있다. 진도 바다에서 아직 주검조차 찾지 못한 아이들과 부모들의 애끓는 마음을 생각하면, 한없이 슬프다.


1년 내내 최악의 슬픔과 절망을 겪은 자라 할지라도 이날만큼은 비장하게 위안과 축복을 빌어야 하겠지만, 그걸로도 속은 편하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크리스마스는 온전히 즐기기 어려운 무게의 날임을 느낀다. 아주 어릴 적엔 크리스마스를 정말 좋아했었다. 지금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제대로 달력도 못 볼 때라 날씨가 더우면 여름이구나 추우면 겨울이구나 하던 때인데, 크리스마스는 항상 몇 밤이나 더 자면 오냐고 엄마, 아빠에게 보챘던 기억이 난다.


크리스마스의 무엇이 좋았던 걸까? 성당을 가득 메운 촛불, 성탄 미사가 끝나고 먹었던 어묵 꼬치, 산타가 준다는 황홀한 선물, 길거리를 장식한 불빛들,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던 캐럴... 무엇하나 저것이라고 꼭 찍을 순 없지만, 그것들이 주는 밝고 따뜻한 분위기가 한데 어울려 나를 들뜨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싫지는 않다. 의미가 퇴색되었어도, 특별하게 즐거운 일이 없어도, 방안에서 불도 다 끄고 홀로 궁상을 떨어도, 먹먹한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고 '그래, 오늘이 크리스마스지.' 되새겨볼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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