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하얀말

2013. 5. 25. 14:33일기

<제주도의 하얀말>

2013.05.13 월요일


수학여행 첫날 점심을 먹고난 뒤, 제주도 산기슭에 올라 승마체험을 하였다. 내가 탄 말은 몸이 하얗고 엉덩이에 갈색 반점이 박힌 말이었다. 제주도의 말은 다른 곳의 말보다 작다고 들었는데, 직접 말에 올라타 보니 어린 시절 아빠 어깨에 무등을 탈 때 만큼 높이 느껴졌다.


말은 생각보다 키가 컸고, 말과 땅 사이의 거리도 생각보다 높았다. 종아리부터 엉덩이까지 꿈틀거리는 말의 체온이 전해져서, 차나 버스 같은 이동 수단과는 달리 살아있다는 느낌이 온몸에 강하게 퍼졌다. 말이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온몸이 위아래로 흔들렸고, 특히 헤드셋을 끼고 비트감이 강한 음악을 감상하며 고개를 흔드는 사람처럼 말은 머리를 계속 위아래로 움직였다.


'뚜부닥, 뚜부~' 소리가 말 발이 땅과 닿을 때마다 울렸다. 난 이소리가 날 때마다 말이 갑자기 흉폭해져서 날 내동댕이 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두걸음, 세걸음, 별 문제 없이 말은 잘 걸었다. 날 갑자기 내동댕이 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말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여 땅을 보면서 걷기만 했다. 다만 좀 걸리는 게 있다면, 말이 걸을 때마다 위아래로 움직여 엉덩이가 아팠고, 말은 넓은 트랙 위를 걷지 않고, 자꾸 옆에 풀밭이 있는 오른쪽으로 아주 딱 붙어 걸어서 내 다리가 자꾸 울타리에 부딪혔던 것이다.


아직 별 문제 없이 걷던 말은 갑자기 트랙 한가운데에서 멈추어 서더니 더 앞으로 나가질 않았다. 말이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을 말의 몸에 바짝 닿아 있는 내 두 다리로 느꼈는데, '말이 뭐가 무서운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곧이어 뒤따라 오던 말 탄 친구가 "으악~! 상우 말 똥 싼다~!" 외치는 바람에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내 왼발 아래 쪽에는 갈색의 연기가 나는 지점토 같은 덩어리가 뭉텅이 째 떨어져 있었고, 말은 몇 번 꼬리를 털더니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데 이게 왠 걸? 뒤 따라오던 친구의 말도 갑자기 멈추어서 시원하게 똥을 싸는 것이 아닌가! 그아이의 말만 그런 것이 아니고, 뒤에 오던 아이의 말마저 길가에 서서 똥을 쌌다. 그래서 '말들이 서로 추월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했던 조련사 선생님 말씀과는 달리, 처음에는 간격이 벌어져 있던 말 세마리가 나란히 걷고 있었고, 그중 한마리의 말은 작은 새끼 망아지가 계속 따라왔다. 나는 이제 말의 흔들림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용기를 내어 옛날에 자전거 탔을 때처럼 양팔을 고삐에서 놓고 쫙 펴보기도 하고, 엄마 말을 따라오는 새끼 말을 감상했다.


새끼 망아지는 다리가 가늘기는 해도 다부지게 잘 걸었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나 세상을 처음 보는 것처럼,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가진 망아지를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갑자기 말이 확~ 속도를 내는 것이 아닌가! '뚜부닥, 뚜부닥~' 천천히 말 발굽이 움직이던 소리에서,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하는 영화나 서사 드라마에 나오는 역동적인 소리를 내며 말은 달리기 시작했다. "으워어~!" 나는 순간 몸이 뒤로 젖혀지며 느슨하게 쥐었던 말고삐를 본능적으로 손에서 땀이 나도록 꽉 쥐었다. 내가 탄 말 뿐만이 아니라 뒤따라 오던 친구가 탄 말, 앞서 가던 친구의 말도 덩달아 달리기 시작했고, 아이들도 나와 같이 "으아~! 으아아~!" 소리를 내며 갑자기 달리는 말에 놀라 어쩔 줄 몰랐다.


말들은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고 말마다 달리는 빠르기가 제각각이어서. 이대로 가다간 어느 말 한마리가 다른 말을 들이받아서 큰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에 휩쌓였다. "말님, 갑자기 속도를 내지마시고 조금만 천천히 가시면 안될까요?" 그렇게 나는 말에게 존댓말을 쓰며 대화했다. 말에게 계속 말을 걸어 불안을 떨쳐내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갑자기 빨라진 말의 속도에 적응이 되었고, 어느 샌가 나는 바로 앞에서 부채질을 하듯이 얼굴에 스치는 바람과, 앞으로 온몸이 쏘아져 나가는 듯한 속도감을 즐기고 있었다. 말이 한번 달음박질 할 때마다 말도 내몸도 위아래로 크게 흔들려, 팬티하고 바지가 자꾸 빨려들어와 엉덩이가 낑겼지만, 빠른 속도에서 오는 쾌감이 그런 것을 잊게 해주었다. 뭔가 응어리가 말과 함께 날아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