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생일 선물

Posted in 일기 // Posted at 2009/08/13 10:50
<슬픈 생일 선물>
2009.08.07 금요일

이 세상에 생일만큼 기쁜 날이 또 있을까? 그리고 생일마다 한결같이 기쁘게 보내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제 오늘 밤 11시가 되면, 12년 전 내가 태어난 시각이 된다.

아침부터 난 들떠 있었다. 모든 걸 새로운 마음으로 느꼈다. 그래서 아침 기지개를 켤 때도, 이제 막 태어난 아기처럼, 음마아~ 울부짖는 소리를 내어 몸을 쫙 폈다. 그리고 가족들이 내 생일 축하해주는 분위기를 느끼려고 눈을 반짝거렸다.

그런데 아침부터 뭔가 꼬였다. 엄마와 영우가 한판 붙은 것이다. 영우는 내가 생일 선물로 받은 닌텐도 칩을 꼬투리 잡아 엄마에게 따졌고, 엄마는 잔뜩 화가 나셨다. 며칠 전부터 나는 내 생일 선물로 칩을 사달라고 요구했었다. 그건 내가 부모님께 하는 보기 드문 요구였다. 미역국을 안 끓여도 되고, 생일상을 안 차려 주셔도 괜찮으니, 이번엔 다른 친구들처럼 나도 칩을 선물 받고 싶다고 한 것이다.

엄마는 영우도 사달라고 조를 것이라서 안 되고, 비싸서 안된다고 하셨다. 아빠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다가 어제 아빠가 나를 부르시더니, 칩을 내미시면서, "인터넷에서 주문해 산 거란다. 엄마와 영우 신경 쓰지 않게 조절해서 하렴!" 하시는 것이었다. 난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내가 그만 생일을 맞아 한없이 자비로운 마음이 되어, 잠들기 전 영우에게 그 사실을 말해버린 것이다. 형아는 너무 행복하고 이 칩을 너와 나눠 쓰겠노라고!

오늘 아침, 영우는 더위를 먹은 아이처럼 머리를 흔들며 엄마에게 따졌다. 엄마는 칩은 절대로 안 사준다고 했으면서, 왜 형아만 사주고 나는 안 사주냐며, 자기도 칩을 사 달라며, 막무가내로 굴었다. 나는 땅이 꺼지는 것 같이 불안해졌다. 오늘만큼은 방학 내내 날카로우신 엄마와 충돌을 피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생일을 맞고 싶었는데, 이미 일은 커져 버렸다. 엄마는 영우의 생떼에 폭발하셨고, 그 불똥은 나한테 떨어졌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러길래 왜 칩을 사달라고 난리였니? 니가 정신이 있는 애냐? 동생 떼 쓸 거 알면서! 너 엄마 말 안 듣고 칩 샀으니, 생일 케잌은 없다!" 불호령을 하시며 울고불고 대드는 영우를 마구 두드려 패시는 엄마를 보며, 나는 참지 못하고 무너지듯 엉엉 울며 빌었다. "엄마, 잘못했어요! 다시는 칩 사달라고 안 그럴게요~ 어허헝~" 난 눈물로 범벅이 된 채, 집을 나와버렸다. 그리고는 후회에 가득 찬 마음으로 며칠 전에 올라가 보았던, 아파트 뒷산으로 올라갔다.

그냥 씁쓸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이봐, 8월에 태어난 밤 호랑이, 뭐 땜에 그렇게 힘이 없냐?' 며칠 전과 다르게 엄청나게 진한 초록색으로 변한 소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움직이며 내 어깨를 만지는 것 같았다. '응~ 내가 어리석었어. 칩을 사달라고 조르다니, 그건 화 덩어리였어. 왜 그걸 몰랐을까? 덕분에 생일 케잌도 못 먹어!' 그러자 '호랑이가 무슨 생일 케잌? 이건 어때?' 하는 것처럼 소나무 가지들이 크게 출렁거렸다. 난 눈을 감고 고개를 하늘로 들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시원해서 두 팔을 나도 모르게 크게 벌렸다.

슬픈 생일 선물

상우일기 - Sangwoo Diary
http://blog.sangwoodiary.com/trackback/499 관련글 쓰기
  1. seob

    생일케이크보다 칩이 더 좋은 것 같은데요ㅋㅋㅋ
    케이크는 오만정도인가? 하지만 칩은 10만원이 넘을 텐데 ㅋㅋㅋ

    • Favicon of http://blog.sangwoodiary.com BlogIcon 상우

      으악! seob님, 그렇게 비싼 칩도 있나요?
      제 칩은 3만 5천원이고요, 10만원이 넘는 정도라면 사달라고 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전 케잌이 더 좋아요.^^

  2. 아저씨

    이미 늦은 것 같아요... 하지만 생일 축하합니다! :-)

    • Favicon of http://blog.sangwoodiary.com BlogIcon 상우

      안녕하세요? 아저씨,
      쑥스럽지만 늦은 생일 축하, 감사드립니다!
      아저씨도 더운 여름을 잘 보내세요.^^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1009_alisha BlogIcon Alisha

    8월의 밤호랑이님, 늦었지만 생일축하해요^^

    자신의 갖고 싶은 마음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더 생각할 줄 아는 모습이, 나이먹은 나보다 훨씬 낫네요..^^
    그리고 어머님이 화내신 건 너무 맘에 두지 말아요~ 어머님도 미안해 하고 계실 거에요

    • Favicon of http://blog.sangwoodiary.com BlogIcon 상우

      Alisha님, 감사합니다!
      더운데 잘 지내시죠?
      그렇지 않아도 어머니께서 사과하셨어요, 저두요~
      어머닌 화낼땐 무섭지만, 시간이 지나면 꼭 화해를 청하셔서 괜찮아요.^^

  4. jinny

    뭐 어때요~ 케잌은 가족들 생일때도
    실컷 먹을 수 있는데요~ㅋㅋ

  5. oily nosy

    저와 비슷한 삶을 사시는군요.
    저희 어머니와 비슷하십니다.
    "두드려 팬다." 참 자주 듣는 말입니다.
    ㅠㅠ

    • Favicon of http://blog.sangwoodiary.com BlogIcon 상우

      아, 그러셨군요!
      이상하게 저는 엄마가 하는 말이라면, 두드려팬다는 말도 왠지 정이 가요.^^

  6. 양승은

    생일이었어?
    몰랐네 ㅋ 축하해

  7. 유다영

    생일선물은 뭘로할까

sub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