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17 수요일
오늘 낮 우리 학교 강당에서, 방송국에서 나와 '퀴즈 짱'이라는 프로를 녹화하였다. 학교별로 퀴즈 대회를 열어서 우승자를 뽑고, 우승자들끼리 모여 왕중왕을 가리는 TV프로라고 한다. 난 방송국에서 나누어 준 모자를 쓰고 맨 앞줄에 앉았다. 행운의 7번을 달고!
4, 5, 6학년 100명이 모여 시작했는데, 어느덧 자리는 깎아버린 잔디처럼 듬성듬성 비어가고, 16명 정도가 남았다. 나는 내가 여기 끼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아무런 대비 없이 이 자리까지 왔다는 것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진행 중간마다 아나운서 아저씨가 "와~ 이름이 정말 멋있네요!" 하며, 내 이름이 어떤 유명 배우랑 같은 것을 강조했고, 아이들이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인 것처럼 우와~ 탄성을 지른 것과, 연예인 이름과 같은 참가자들이 다 탈락하자, "이제 연예인은 상우밖에 안 남았네요, 연예인 대표 권상우, 열심히 합시다!" 하는 것도 별로 재밌지 않았다. 그게 퀴즈랑 무슨 상관일까?
난 이번 퀴즈 대회에 아무런 준비 없이 나왔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한달 전 쯤 예선에서 간신히 통과했었고,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가, 녹화날인 오늘이 되어서야 아! 오늘이 퀴즈대회로구나! 하며 왔다. 그리고 여기까지 쉽게 올라온 것이 아니라, 문제마다 애를 먹으면서 고민하다가 결국 답을 맞혔고, 매 순간 순간마다 운 좋게 살아남았다. 그것만으로도 난 이미 우승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우승까지는 못하더라도, 최후의 5인 안에는 들어 9월에 열린다는 학교 왕중왕전에 도전하고 싶은 의욕이 점점 솟았다. 내 마음속에서는 거칠 것 없는 자동차처럼 신나는 젊은이의 노래가 붕붕 울렸다. 그리고 곧, 무슨 문제가 나오든 쉽게 풀어버릴 수 있을 것 같던 상태에서, 나의 꿈을 한낮 추억으로 만들어 버린 문제가 나오고 말았다.
아나운서 누나가 기계처럼 읽은 문제는 "어떤 대상을 마치 사람처럼 표현한 표현법을 무엇이라고 하나요?'" 였다. 내가 왜 그 문제에 무너져 버렸을까? 순간 마음속에서 신나게 질주하며 노래 부르던 가수도 돌처럼 굳어버렸다. 나는 당황해서 대체에너지를 쓰듯 내 머릿속 사전을 찾아 헤맸다. 분명히 '인'이란 글자 다음에, 무슨 가운데 글자가 있을 것 같고, 그다음 '법'인 것 같은데, 도무지 가운데 글자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냥 화이트 보드에 '인법'이라고 쓰려고 하다가, '인' 만 썼다 지우고 결국 백지를 내들었다. 답은 '의인법!'이었다. 그런데 나는 뭔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의인법이 대상을 사람처럼 비유한 표현법이라면, 내가 평소에 글을 쓸 때, 잘 쓰던 비유법 아니었던가? 이 문제를 맞춘 형들은 평소에 의인법을 즐겨 썼을까? 나는 내 자리를 정리하고, 쓸쓸히 나와 같은 차례에 떨어진 우리 반 성주 옆에 앉아 남은 대회를 보았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오면,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것과 아는 것이 같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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